‘미디어스케이프’는 전자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소통되면서 야기되는 새로운 형태의 상상과 실천이 만들어내는 세상을 가리킨다. 백남준은 미래의 미디어스케이프에서 살아갈 인간의 인식과 존재 방식의 변화에 대하여 고민하고 작품과 텍스트를 통해 그 깊은 통찰력을 드러내었다. 본 전시는 백남준이 직접 만들어 놓은 미디어스케이프를 경험하는 것은 물론, 그가 생각했던 미래의 미디어스케이프를 백남준의 걸음으로 따라가 본다. 이는 이미 지도를 손에 넣고 출발하는 것과는 다른 흥미로운 여행이다. 과거와 미래가 동일 선상에 놓이고 시간의 속도가 조작된 백남준의 비디오처럼 새로운 경험이 된다. 때로는 직접 작품에 참여하고, 온몸으로 설치 환경을 인식하며, 의식적으로는 매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백남준은 전자 TV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매체와 인간, 기술과 생태, 그리고 사이버네틱 문화 안에서의 예술과 삶에 대해 그 만의 미디어스케이프를 통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생각을 옮길 수 있는 정주유목민을 꿈꿨다. 백남준의 미디어스케이프는 여전히 미래진행형이다.
백남준은 뒤셀도르프의 교수로 있는 동안 뉴욕과 독일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한때 플럭서스 멤버이기도 했던 에릭 안데르쉬는 백남준이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가까이 지내며 그의 작업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최초의 휴대용 TV>는 백남준아트센터가 2009년 에릭 안데르쉬로부터 구입한 소장품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다. 일상의 물건에 자신의 미디어에 대한 비전을 담아 <최초의 휴대용 TV>라는 제목을 붙인 이 소품에는 백남준의 플럭서스적인 유머가 가득하다.
12개의 모니터에 초생달에서부터 보름달에 이르기까지 달의 다양한 모습이 보이도록 TV 속의 내부회로를 변경한 작품이다. 각각 다른 열두 가지의 시간이 동시에 제시되면서 관람객은 현실적 시공감각을 잃고 명상에 잠기게 된다. 백남준의 시간성은 이처럼 선형적인 시간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 랜덤한 접근이 가능한 조작된 시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좌대위에 놓였던 모니터를 천장고까지 올려 설치함으로써 실제 달을 바라보는 것처럼 연출하였다.
총 24개의 모니터로 설치된 TV 시계는 모니터의 주사선을 조작하여 선 하나만이 빛을 발하는 <선을 위한 TV>와 같은 원리로 제작되었다. 하루 24시간을 상징하는 24개의 모니터가 각각 다른 기울기의 선을 보여주며 한 바퀴 회전하는 그 각도를 24개로 나누어 24시간을 표현한다. 여기서 비디오라는 순간적인 매체는 전자광의 광선 한 줄로 응축되어 얼어붙은 이미지로 시간의 개념이 언급된다. 관객들은 한 눈에 24개의 모니터를 감상함으로 시간의 전개에 따른 연속성을 경험하게 된다.
열대숲의 원시적 생명력과 비디오 판타지의 리듬이 주파수를 맞추면서 생명박동을 낳는 작품이다. TV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글로벌 그루브>는 맥루한이 언급한 ‘글로벌 빌리지’의 소통의 매체로서 춤과 음악을 제안하고 있다. 1974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의 개인전에서 최초로 구상되었고 당시 식물을 살 돈이 없어 로 출현했지만, 그 후 뉴욕 에버슨 미술관, 시카고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휘트니 미술관, 도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작품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tv정원>은 백남준이 의도했던 것처럼 정원을 둘러볼 수 있는 작은 회랑으로 에워싸여 있고(근경), 위에서 숲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도록 되어 있다.
독립 영화와 비디오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체로, 각각 다른 방향성과 무수한 담론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혁신적인 독립영화들이 먼저 발전하고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비디오가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힘입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1964년에 뉴욕에 도착한 백남준은 <필름을 위한 선>을 제1회 뉴시네마 페스티벌에서 처음 발표했다. 스크래치 난 투명 필름을 영사기를 통해서 투사하면 먼지와 미세한 빛의 반짝임이 스크린에 포착된다. 이 영화는 셀룰로이드라는 영화의 물질성, 영화 상영 과정의 퍼포먼스 그리고 미니멀한 구조 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조나스 메카스는 “이미지 자체를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빛이 이미지가 되게 했다”는 평으로 그 중요성을 지적했다. 백남준은 <손과 얼굴>, <단추 해프닝> 같은 영화에서도 실제 시간에 기반한 신체 퍼포먼스를 통해 영화의 구조와 미니멀한 프로세스를 탐구한다.
영화 제작자 저드 얄커트 역시 백남준의 영화가 가진 중요성에 주목했다. 그는 백남준이 조작한 초기 비디오 이미지를 필름으로 녹화하고 편집하고 때로는 사운드를 입혔다. 이렇게 만들어진 필름 중에는 <비디오테이프 연구 No.3>, <전자 비틀즈>, <전자 달> 등이 있다. 또한 이 두 사람은 공동 작업을 통해 시네마 메타피지크 시리즈에서 필름 스크린을 개념적 프레임으로 처리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시네마 메타피지크 2,3, 4>는 백남준의 신체를 분할하여 각각 다른 프레임 구조에 담아내고 이를 다시 필름 안에서 구성해낸다.
백남준의 업적은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플럭서스, 해프닝, 독립영화제작, 비디오 아트가 용광로처럼 들끓던 뉴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나의 매체에 머무르지 않고 주변의 복합적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백남준은 영화에서 실험했던 개념을 텔레비전과 비디오, 그리고 비디오 환경을 통한 설치까지 발전시켜 나갔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는 기억에 남을만한 행위예술들에서 서로 협업한 바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었고, 예술적 미디어에 관해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다른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정확하게 이 양극은 서로 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보이스가 예술적, 사회적 조각의 확장 개념을 가지고 추구한 것을 백남준은 그만의 방식으로 미디어 아트의 발명과 그것의 전 세계적 전파를 통해 구현했다. 보이스가 전자 기술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이었던 반면, 백남준은 세계적 창의적 생각들을 교환하는 데 있어서 음극선 튜브의 새로운 잠재력을 보았다. 그들은 사전 협의 없이도 공통의 비결정성의 예술로 나아갔으며, 예술가적인 친밀한 우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맹목적으로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