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2015년 1월 29일부터 6월 21일까지 백남준전 《TV는 TV다》를 개최한다. 백남준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클루언의 문장을 패러디하여 “미디어는 미디어다”라는 작품을 만든 바 있다. 맥클루언은 미디어 자체가 의미전달에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고 하였으나, 백남준은 의미전달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환경 그 자체가 되어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하려 하였다. 이번 백남준전 《TV는 TV다》는 백남준의 주요 매체였던 텔레비전이 환경이 된 상황을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백남준 식 아날로그 영상 편집을 가능하게 했던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와 다양한 TV 조각들, 폐쇄회로 카메라를 이용한 설치들, 그리고 백남준이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만든 영상들이 전시된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예술의 매체로 활용하기 위해, 텔레비전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이끌어냈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단순한 정보의 수신장치를 넘어, 감각적 실험의 도구, 실시간 개입의 통로, 로봇과 악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다가가는 방송 환경이었다. 이번 백남준전 《TV는 TV다》에서는 백남준의 다채로운 TV 사용법을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백남준아트센터의 다양한 소장품을 중심으로 TV의 속성을 크게 ‘실험’, ‘라이브와 재생’, ‘신체’, ‘방송’의 4가지로 구분하였다.
백남준, 데이빗 앳우드, 만프레드 몬트베, 요셉 보이스, 이라 슈나이더, 저드 얄커트, 피터 무어
2015년 1월 29일 목요일 오후 5시
평일/일요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6시(2월까지), 오전 10시 ~ 오후 7시(3월부터)
두 번째/네 번째 월요일 휴관
(3월부터 평일, 일요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7시)
<참여 TV>, 1963/1998, 장치된 TV, 마이크, 앰프, 가변크기
<닉슨 TV>, 1965/2002, 장치된 TV, 코일, 앰프, 스위처, 가변크기
<왕관 TV>, 1965/1999, 장치된 TV, 오디오 신호발생기, 앰프, 냉각기, 가변크기
백남준은 TV 회로를 조작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거나 기존 이미지를 변형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이런 시도는 그의 첫 개인전인 1963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에서 선보인 13대의 실험 TV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그 중 <참여 TV>는 관객이 텔레비전에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서 소리를 내면 오디오 신호가 비디오 신호로 바뀌어 화면에 춤추는 듯한 형태인 “댄싱 패턴”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또한 <왕관 TV>에서는 오디오 신호발생기와 증폭기에 연결된 TV 화면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왕관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닉슨 TV>에서는 흑백 TV 화면 앞에 구리 코일을 설치하여 전류를 흐르게 하면 미국의 정치인 리처드 닉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렇게 오디오 신호와 자기력을 이용하여 TV 이미지를 조작하는 기술은 이후 비디오 신디사이저에도 쓰이게 되며, 색과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백남준의 비디오 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기본 조형 원리가 된다.
영상합성장치, 156x208x150cm
백남준은 1969년 일본의 공학자 슈야 아베와 함께 아날로그 TV 영상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기계인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했다.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여러 경로의 입력과 출력을 지원하며, 간단한 조작만으로 영상의 색과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합성 장치를 갖고 있어 이미지의 무한한 조합이 가능하다. 이미 편집된 영상 소스, 카메라에 찍힌 영상 등을 입력하면 오디오 신호나 자기력을 이용하여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TV 회로의 축을 바꾸거나 모니터에 출력된 이미지를 카메라로 촬영하는 비디오 피드백을 통해 재합성하는 복합 피드백도 가능하다.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1972년까지 세 대가 제작되었으나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백남준아트센터는 2011년 슈야 아베와 협력하여 ‘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신디사이저의 기능을 복원하였다.
ⓒNam June Paik Estate
13채널 비디오 설치, TV, 컬러, 유성, 가변크기
처음에는 흑백 아날로그 텔레비전에 자석을 설치하여 자석과 CRT 모니터와의 거리를 조절해서 달 모양을 만들었으나 이후에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달의 위상이 변하는 모양을 만들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버전은 2000년에 새로 제작된 것으로 12대의 모니터가 보름달에서부터 그믐달이 되었다 다시 커지는 단계까지 12장면을 보여주고, 마지막 13번째 모니터에서는 1997년 새로 만들어서 추가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달의 밝고 어두운 부분에서 사람의 얼굴이나 어떤 모양을 읽어냈다. 빛에서 모양을 보고 이야기를 읽어내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은 텔레비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백남준은 1982년 회고전 당시 한국인은 달을 보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은 한국과 중앙아시아 밖에 없어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비디오 설치, 부처조각상, TV, 폐쇄회로 카메라, 컬러, 무성, 가변크기
백남준은 불상이 TV를 보고 있는
1채널 비디오 조각, 앤틱 TV, 라디오, 컬러, 무성, 116x141x33cm
백남준이 실존 인물을 소재로 만든 로봇 시리즈 중의 한 작품으로, 밥 호프는 코미디언이자 배우, 가수, 댄서, 작가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한 때 미국 방송 문화를 상징하던 인물이다. 1984년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밥 호프는 비디오 아트와 백남준에 대해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을 때, 비디오 아트가 무엇인지, 백남준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실험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전개될 미래의 텔레비전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며 그 미래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화답하듯 백남준은 앤틱 TV와 라디오를 이용해 밥 호프의 몸을 만들었고, 총 5대의 모니터에서는 밥 호프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합성한 컬러 영상이 나온다.
1채널 비디오 조각, 앤틱 TV, 라디오, 전구, 컬러, 무성, 152x185x56cm
백남준이 실존 인물을 소재로 만든 로봇 시리즈 중의 한 작품으로,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찰리 채플린을 형상화한 것이다. 빈티지 모니터, 구형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몸체가 이루어졌으며 구형 전구가 양 손의 역할을 한다. 다섯 대의 모니터에서는 합성된 채플린의 영화 속 장면들이 등장한다. 백남준은 자신에게 예술적 자극을 주었거나 대중예술의 창조적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들에 대한 존경을 담아 로봇 연작으로 만들었는데, 이 로봇 역시 희극적 요소로 인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채플린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1채널 비디오 조각, 라디오, 소형 모니터, 축음기 스피커, 컬러, 무성, 108x183x61cm
여러 모양의 앤틱 진공관 라디오 아홉 대로 슈베르트를 표현했다. 빨간 축음기 스피커를 고깔처럼 쓰고 있으며 라디오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문양, 즉 스피커의 촘촘한 가로세로 선, 문자반의 원형 다이얼과 주파수 숫자, 그리고 함께 달려 있는 시계의 시각적 요소들이 전체적 구도에 기여한다. 이 중 세 대의 라디오 안에는 소형 모니터를 넣어 영상을 보여주는데, 한 대는 정상적인 각도로, 다른 한 대는 위 아래를 뒤집어서, 그리고 마지막 한 대는 스피커 뒷면에 넣어 같은 영상이 각기 다른 이미지로 보이도록 했다. 영상에서는 샬롯 무어먼이 백남준의 신체를 첼로 삼아 연주하는 모습과 과달카날 섬에서 벌이는 퍼포먼스, 백남준이 거리에서 벌인 <로봇 오페라>와 자신의 실험 텔레비전으로 화면 조작 시연을 하는 모습 등이 나온다.
1채널 비디오 설치, TV, 색전구, 흑백, 무성, 가변크기
백남준이 처음으로 만든 샹들리에 형태의 설치작품으로, 38개의 흑백 TV 모니터가 다양한 색깔의 장식용 전구들과 전기선들과 함께 천장에서 늘어져 매달려 있다. 다른 비디오 샹들리에에 비해 단순한 형태로 되어 있고, 흑백 모니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TV 모니터에서는 추상적인 패턴들이 움직이는 화면이 나오고 있어서 이 작품에서 TV는 제목처럼 일상의 공간을 밝히는 조명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정보를 전달한다. 백남준이 달이나 촛불 같은 자연물이나 전통적인 소통의 매개체를 TV와 연결시켰던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백남준이 강조하듯 TV가 기본적인 환경이 된 시대를 생각해보게 한다.
2채널 비디오 조각, TV, 액자, 컬러, 무성, 230x190cm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금색 도장을 한 나무 액자 안에 20대의 컬러 모니터가 배치되어 있고, 2채널의 TV 모니터에서는 빠른 속도로 변하는 화려한 추상적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퐁텐블로”라는 제목은 프랑스의 퐁텐블로 성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성은 나폴레옹을 비롯한 프랑스의 군주들이 머물렀던 화려한 거처로, 그림을 나란히 걸어놓는 공간인 ‘갤러리’의 원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프랑스와 1세 갤러리는 백남준의 이 작품처럼 벽에 걸린 회화 작품들이 화려한 금색 장식에 둘러싸여 있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신했듯이, 음극선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는 백남준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무 및 금속 주방기구, 32×7.5x2cm
주방기구의 일종으로 보이는 작고 낡은 나무판 위에 TV 화면 모양으로 그림을 그리고 “최초의 휴대용 TV”라고 제목을 붙인 백남준 특유의 재치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나무판 위에는 물결 모양의 요철이 있는 금속판이 덧대어 있어 TV의 주사선을 연상시키고,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어 휴대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남준이 일상이 된 TV를 강조하기 위해 달, 촛불, 샹들리에 등 전통적인 빛의 이미지들과 연결시켰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광원은 없이 모양만 유사하기 때문에 백남준의 가벼운 익살 정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그 프레임의 크기에 맞추어 수많은 정보들이 생산되고 재구성되며 또 그에 따라 일상이 크게 변화하는 오늘날, 흔한 물건에서 TV의 프레임을 읽어내는 백남준의 시선에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통찰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