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남준 (Nam June Paik)
-국외: 마리 바우어마이스터(Mary Bauermeister), 만프레드 레베(Manfred Leve), 만프레드 몬테베(Manfred Montwé), 아베 슈야(Shuya Abe), 저드 얄커트(Jud Yalkut)
바실리 칸딘스키의 저서 『점·선·면』은 “회화적인 요소의 분석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단순히 점, 선, 면이라는 눈에 보이는 조형요소로 회화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점, 선, 면이 왜 중요하게 고려되며, 이것들이 어떠한 고유성을 지니며, 또 어떤 방식으로 함께 모여서 하나의 구조물을 이루는가에 대한 칸딘스키의 고찰은 진정한 예술 세계는 우주의 법칙과 연결된다는, 회화의 영역을 넘어선 예술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백남준은 “콜라주가 유화를 대체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칸딘스키의 회화에서 점, 선, 면이 기본적인 요소라면, 백남준의 캔버스(텔레비전)에는 시간, 공간, 관객참여, 불확정성, 우연성 등 보다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따라서 내부 회로를 조작하거나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로 합성한 영상을 담은 백남준의 캔버스(텔레비전)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전통적인 캔버스를 감상할 때와는 다른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점-선-면-TV》전은 백남준의 캔버스인 텔레비전을 비롯하여 스코어, 필름, 영상 등 그가 다루었던 다양한 인터미디어적 매체들을 평면성이라는 개념 안에서 탐구해 보는 전시이다. 특히 본 전시에는 그동안 자주 소개되지 않았던 백남준의 드로잉과 회화 작업들도 다수 출품된다. 그의 평면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은 하나의 화면 안에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보이는 즉흥적이고 의도되지 않은 우연성을 발견하게 된다. 《점-선-면-TV》전은 평면성의 관점으로 백남준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열린 회로”로서의 전시가 될 것이다.
“콜라주가 유화를 대체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붓이나 바이올린, 또는 폐품을 가지고 작업을 하듯이 앞으로는 축전기, 저항기, 반도체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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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전자 비디오테이프 녹화기』, 뉴욕 ‘카페 오 고고’에서 비디오테이프 상영 시 나눠준 팜플렛에 수록, 1965
백남준은 퍼포먼스 공연을 자주 열었던 뉴욕의 ‘카페 오 고고’에서 1965년 자신의 첫 번째 비디오 녹화 테이프를 상영했고, 이 자리에서 『전자 비디오테이프 녹화기』라는 팜플렛을 나누어 주었다. 고풍스러운 금색 도장을 한 나무 액자 안에 20대의 컬러 모니터가 배치된 <퐁텐블로>는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백남준의 언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2채널의 TV 모니터에서는 화려하면서도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퐁텐블로’라는 제목은 프랑스의 퐁텐블로 성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성은 나폴레옹을 비롯한 프랑스의 군주들이 머물던 거처이자, ‘갤러리’의 원형인 프랑스와 1세 갤러리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갤러리에는 금장 액자 안에 캔버스를 넣은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던 백남준은 경기공립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7년 김소월의 시 <먼 후일>과 <많고 많은 날이 지난 후>에 곡을 붙이는 등 15세 무렵부터 작곡을 시작하였다. 중학생 백남준은 쇤베르크, 바르톡과 같은 현대 작곡가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쇤베르크의 작품에 매료되어 일본의 도쿄대학교에서 쇤베르크에 대해 졸업논문을 썼다. 음악 공부를 위해 독일로 건너간 백남준은 예술 장르의 구별 없이 무경계 예술을 실험한 예술 집단인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인터미디어’라는 플럭서스의 본질적 특징을 제시한다. 음표가 그려진 일반적인 스코어(악보)가 아닌 문장으로 구성된 그의 악보는 음악적 요소와 함께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성격을, 문장에 따라 행동을 취한다는 점에서 연극적 특성을, 때로는 지시문이 족자에 그려진다는 점에서 회화적 요소를 동시에 보여준다.
존 케이지는 4분 33초 동안 연주자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빈 시간 속에서 관객들이 환경 의 소리를 듣는 자신의 작품 <4분 33초>, 아무것도 없는 빈 캔버스인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화이트 페인팅>, 그리고 역시 아무것도 없는 빈 필름을 상영하는 백남준의 <필름을 위한 선>을 비교하며 이 모두가 침묵의 성질을 공유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백남준에게 빈 필름은 비어있으나 비어있지 않은 일종의 평면이었다. 빈 필름이 돌아가는 16mm 영사기에서 나오는 강렬한 조명은 필름에 붙은 먼지의 형상을 흰 벽면 위에 뚜렷이 그려냈다. 한편 백남준에게 필름은 움직임의 변화를 담아내는 평면이기도 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행동들을 기록한 16mm 흑백 필름 영상을 1960년대에 촬영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필름들은 퍼포먼스에서 전자 매체로 관심이 옮겨가는 과정 중에 있던 백남준이 퍼포먼스와 영상의 관계, 영 상과 사운드에 대한 실험 등과 같은 다양한 예술적 고민들을 표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드 얄커트와 백남준의 미디어 실험 “비디오-필름” 시리즈 중 하나로, 이 영상에는 백남준뿐만 아니라 다케히사 고수기, 정체불명의 인디언의 얼굴도 등장한다. 출연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 퍼포먼스 등이 여러 가지 비율로 분할된 흑백화면에 등장하면서 움직임도 가장 최소화 하고 있는데, 이는 <손과 얼굴>과 함께 비디오-퍼포먼스-필름으로 이어지고 확장되는 백남준의 실험성을 보여준다.
백남준이 텔레비전을 또 다른 캔버스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이다. 그는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의 WDR 방송국에서 전자음악 작업 활동을 했던 시기에 다수의 방송장비들을 접하고 방송관련 인물들을 만나면서 텔레비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63년 열린 첫 번째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에서 예술 작품이 된 13대의 텔레비전을 선보였다. 백남준의 텔레비전 사용이 다른 예술가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관람객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되는 상호작용을 중시하고, 네트워크의 확장을 예술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 텔레비전을 이용한 백남준의 작품들은 텔레비전이 무엇을 만들어가거나 되어가는 과정에 자리한 매체이지 이미 무엇이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두 대의 필코 진공관 텔레비전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한 대의 텔레비전은 기계적인 장치들이 모두 사라진 채 어항이 되었다. 어항이 된 텔레비전 안에는 실제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다. 다른 한 대의 텔레비전에는 폐쇄회로 카메라로 촬영한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살아있는 것과 재생된 영상을 동시에,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은 관념적인 시간에 대한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백남준은 1986년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로봇 가족>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후 백남준은 여러 인물들을 로봇으로 재탄생시켰는데 장영실, 세종대왕, 선덕여왕 등 한국의 위인들을 주제로 한 로봇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16세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을 로봇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에는 일곱 대의 모니터가 있는데, 모니터에서는 부채춤을 비롯한 여러 비디오 영상이 화려하고 빠르게 재생된다.
텔레비전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하고 송출하기 위하여 백남준은 엔지니어 아베 슈야와 함께 1969년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라는 기계를 만들게 된다. 신디사이저의 특징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영상을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작을 통하여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영상이 합성되어 나오도록 고안되었다는 점이다.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여 최초로 만든 작품은 1970년 미국의 공영 방송국인 WGBH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한 <비디오 코뮨: 처음부터 끝까지 비틀즈>였다. 백남준은 방송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위성을 통해서도 자신이 제작한 영상들을 송출하였다. 그는 제 6회 카셀 도큐멘타 개막행사를 위성 생중계한 것을 시작으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등 위성 3부작으로 일컬어지는 대규모 위성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백남준의 실험 정신이 방송 네트워크와 위성을 통하여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객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시청자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백남준의 위성 3부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의 예고편 격인 영상이다. 백남준은 1977년 제6회 카셀 도큐멘타의 개막식 행사를 통해 요셉 보이스, 샬롯 무어먼, 더글라스 데이비스 등과 여러 장소를 연결한 위성 생방송 공연을 진행했다. 이 공연에는 백남준이 비디오카메라로 건반을 두드려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무어먼이 브람스의 <자장가>를 연주하는 동안 백남준이 무어먼의 머리에 텔레비전 케이스를 씌우는 것과 같은 백남준의 주요 퍼포먼스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에 전해지는 전설인 견우와 직녀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온 작품이다. 뉴욕과 파리의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각각의 희미한 전파가 하늘에서 만나는데 이는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보여준 스타들의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을 상징한다. 백남준은 친구이지만 함께 작업한 적이 없던 요셉 보이스와 존 케이지의 만남, 공통적인 성향을 지녔지만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는 보이스와 알렌 긴스버그의 만남 등 위대한 천재들의 만남이 기하학적 진보과정을 거쳐 축적되어 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백남준은 1996년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진 이후에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오른손을 움직여 피아노를 연주하고, 레이저 작품을 제작하는 등 열정적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시기에 백남준이 제작한 드로잉과 회화 작품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은 위성 프로젝트 혹은 TV 작품에서 하나의 화면 안에 여러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보이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전달한다. 즉흥적이고 의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백남준의 드로잉과 회화는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들은 매체와 시공간을 자유로이 이동했던 백남준이 삶이라는 긴 여정의 끝에서 다시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백남준은 자신의 작품 활동의 변화와 여정을 암호화하여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로제타 스톤)>을 제작했다.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 원정 당시 발굴한 로제타석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이 작품의 상단부에는 비디오 드로잉이, 중간 부분에는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력이, 하단에는 백남준의 비디오 영상에서 발췌한 이미지가 위치한다. 가운데 부분에는 백남준이 음악으로 시작하여 왜 비디오라는 매체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는지, 어떤 연유로 플럭서스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또한 백남준과 영향을 주고받은 예술가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 한국어, 영어, 불어, 독어, 일어로 기술되어 있다. 이 부분은 백남준의 예술세계가 어떻게 변천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 단체 20인 이상 성인 2,000원, 학생 1,000원
– 20인 이상 단체 50% 할인, 경기도민 25% 할인
※ 입장은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