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체와 신체가 환경이 될 때
백남준은 1963년 3월 드디어 자신의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을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열게 된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예술 세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시이다. 단순히 텔레비전을 예술 매체로 처음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백남준이 퍼포먼스로써 탐구했던 예술의 개념과 실천 방식이 음악과 텔레비전이라는 두 축으로 집약되어 첫 선을 보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갤러리 파르나스는 건축가였던 롤프 예를링이 자신의 건축사무소 건물에 1949년 문을 열고 1965년까지 160여 차례 이상 전시와 공연을 개최했으며 특히 1960년대 초반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액션, 해프닝 공연을 많이 유치했다. 사진가 만프레드 몬트베가 찍은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사진들을 주요 장면 별로 스케치한다.
사진1. 백남준, <총체피아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2. 백남준, <총체피아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3. <총체피아노를 치는 롤프 예를링>,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갤러리의 중앙 홀에는 고전 음악의 상징인 피아노 네 대가 <총체피아노>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다. 그런데 이 악기들은 피아노 본래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연주’되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두 대는 전면 케이스를 떼어내고 건반과 현 곳곳에 갖가지 사물들을 매달거나 부착하거나 끼워 놓았고 이들은 전선으로 뒤엉킨 채 연결되어 있었다. 인형 머리, 호루라기, 뿔피리, 깃털 장식, 철조망, 숟가락, 동전 더미, 잡동사니 장난감, 사진, 브래지어, 아코디언, 최음제, 전축 팔, 맹꽁이자물쇠, 분리된 건반 지렛대 등. 관람객은 자유롭게 이 피아노들을 연주해 볼 수 있었는데, 건반을 누르면 생소한 소리가 들리거나 장치된 사물들이 움직이거나 주변의 조명등, 사이렌, 환풍기, 녹음기, 라디오 등이 작동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대는 일명 ‘아서 쾨프케를 위한 피아노’로, 쾨프케가 <닫힌 책들>에서 책의 페이지들을 풀로 붙여 읽을 수 없게 만든 것처럼 백남준은 피아노 현 부분에 널빤지를 넣고 닫아서 건반이 눌리지도, 현이 진동하지도 않도록 만들었다.
사진4. 백남준, <총체피아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5. 백남준, <총체피아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총체피아노> 중 이바흐 피아노 한 대는 문짝과 해머를 떼어내고 뒷면이 바닥에 닿게 눕혀져 건반의 위아래 현이 모두 노출되어 있었다. 원래 백남준의 의도는 관람객이 그 위에 올라가서 걷거나 뛰면서 발로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시 개막일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나타난 요셉 보이스가 눕혀 놓은 이 피아노에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러 피아노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백남준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누구도 미리 알지 못했던 해프닝이었지만 백남준은 이 즉흥극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고 기억했다. 전시 공간과 작품들을 관리 중이던 몬트베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양동이의 물을 보이스에게 끼얹었다고도 전한다. 이 피아노는 전시 기간 동안 그 상태로 방치되었고 관람객들은 부서진 피아노를 구경하기도 하고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 피아노는 갤러리 주인인 예를링의 도움으로 조달한 것이었는데, 엥겔스 가문과 함께 부퍼탈의 명문인 이바흐가로부터 직접 구한 오래된 이 피아노에 대해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만일 그 피아노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면 보이스의 첫 피아노 작품이기에 엄청난 가격에 팔릴 것이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없었던 우리는 두 동강이 난 피아노를 이바흐 가족에게 돌려주었고, 그들은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1986)
사진6. <백남준의 랜덤엑세스를 시연하는 페터 브뢰츠만>,,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7. 백남준, <랜덤엑세스>,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를 전시한 이 <총체피아노> 구역을 지나 지하실로 내려가면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들을 이용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먼저 두 개의 무릎 높이 대 위에 수평으로 60cm 길이의 판지 롤러가 모터로 돌아가고 있다. 롤러 위를 폭 50cm의 천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는데, 천 위에는 스풀로부터 풀어낸 녹음테이프를 여러 길이의 조각들로 붙여 놓았다. 이렇게 두 벌의 천 컨베이어 벨트가 놓여 있는 사이 중간 벽면에도 마치 복잡한 도로 지도 모양처럼 보이게 테이프 조각들을 붙여 놓았다. 이제 관람객은 재생 장치에서 분리된 금속 헤드로 이 설치물들에서 원하는 테이프 부분을 훑어 녹음된 소리를 듣는 것이다. 훑는 속도나 방향에 따라 비틀린 전자음악 같은 갖가지 소리가 났다. 기계가 순차적으로 재생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직접 몸을 움직여 임의의 원하는 부분을 듣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 작품은 <랜덤액세스>라고 불렸다.
사진8. 백남준, <음반꼬치>, 1963, 40.2×30.4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9. 백남준, <음반꼬치>, 1963, 40.2×30.4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0. 백남준, <입으로 듣는 음악>,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같은 지하실 공간에는 레코드플레이어를 이용한 작품도 있었다. 앰프, 스피커 기능이 있는 라디오 위에 턴테이블이 갖춰진 레코드플레이어 한 대가 조립돼 있다. 턴테이블의 축이 1미터 정도 높이로 위를 향해 길게 뻗어 있고 회전하는 이 축에 열 장의 레코드판을 꼬치에 꿰듯 임의의 간격으로 끼워 쌓았다. 그 옆에는 유사하게 기둥에 꿰어진 더미가 있고 이 꼬치는 첫 번째 꼬치와 고무벨트로 연결되어 같은 속도로 회전한다. 이렇게 두 개의 꼬치로 구성된 설치물이 두 벌 있었고, 관람객은 마그네틱 카트리지의 톤암을 들고 레코드판의 원하는 곳을 긁어 소리를 들었다. 음반들을 마치 케밥 꼬치처럼 꿰어 놓은 모양에서 <음반꼬치>라는 제목을 붙였다. 턴테이블과 레코드판은 다소 은밀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골동품에 가까운 레코드플레이어에서 카트리지를 분리해 모조 페니스처럼 보이는 장치를 끼우고 바늘을 레코드에 얹어 재생시킨다. 그 모조 페니스를 입에 물고 느껴지는 음반의 진동으로써 음악을 듣는 것이 바로 <입으로 듣는 음악>이다. 몬트베의 회고에 따르면 백남준이 특별히 찍어두고 싶은 사진이 있다고 요청하였고, 보는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에 백남준이 직접 이 <입으로 듣는 음악>을 연출하는 가운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소리를 내는 신체기관인 입을, 소리를 듣는 기관으로 치환하면서 성적인 암시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진11.<TV 수상기에서 앞에서 일하고 있는 백남준>,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2. <텔레비전 방에 있는 토마스 슈미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3. 백남준, <TV 5> ,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전시의 또 다른 한 축인 텔레비전 작업은 <총체피아노>에 비해 당시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백남준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텔레비전 작업은 기억하지 못하고 소머리에만 정신이 팔렸다고 한탄한 적도 있다. 갤러리 입구에 진짜 소머리를 걸어두었다가 전시 개막 직전 보건법 위반으로 경찰에 의해 철거당한 소동을 말한다. 비록 관람객들의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백남준은 이 전시에 실험 텔레비전을 소개하기 위해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회로 연구에 매진했었다. 그렇게 해서 미리 만들어 가지고 온 텔레비전도 있었고, 전시장에서 TV 수상기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원하는 화면이 나올 때까지 내부 회로 변조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것도 있었다. 그 결과물로 선보이게 된 13대의 실험 텔레비전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왜곡하여 화면 이미지를 변형시킴으로써 같은 화면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은 한 대도 없었다.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사전에 내부 회로를 물리적으로 조작하고 전자기적 신호를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동일한 방송 채널의 화면이 네거티브로 보이거나 가로 줄, 세로 줄, 혹은 여러 형태의 곡선이 화면을 방해하여 왜곡되어 보이도록 하는 텔레비전이다. 두 번째 종류는 텔레비전에 외부 장치를 연결하여 관람객의 참여에 의해 어떤 화면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연결된 페달을 밟거나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내면 이에 반응하여 화면에 불꽃같은 이미지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또 각각 녹음기와 라디오가 연결된 텔레비전은 흘러나오는 음악과 라디오의 볼륨에 따라 화면이 달라지는 식이다. 마지막은 고장이 나서 화면에 가로선 하나만 나타나는 텔레비전으로 백남준은 이를 그대로 전시장으로 가져와 옆으로 세워 세로선으로 보이도록 놓았고, 고장 난 또 한 대의 텔레비전은 아예 엎어 놓고 ‘렘브란트 오토메틱’이라는 상표를 부각시켰다. 몬트베는 이 실험 텔레비전들의 화면이 빠르게 지나가버리거나 계속 바뀌었고 상태가 불안정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를 사진으로 찍는 것이 당시로서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사진14. 백남준, <쿠바 TV>,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5. 백남준, <‘아름다운 여성 화가의 연대기’를 위한 앨리슨 놀즈의 국기>,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기술적인 실험에만 매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또 사회의 여러 차원에 침투하는 대중매체의 정치적 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실험 텔레비전 중에는 <쿠바 TV>라는 제목의 수상기가 있었는데 녹음기와 연결된 텔레비전으로 흘러 들어오는 음악의 주파수에 따라 보이는 이미지가 달라지도록 한 것이다. 제목의 ‘쿠바’는 1962년 10월 22일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제 군사 무기의 쿠바 수송 봉쇄 명령을 내리면서 핵전쟁 발발 위기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던 사건인 쿠바 미사일 위기를 암시한다. 소련이 쿠바 혁명을 지지하면서 쿠바에 핵탄두 미사일 발사 기지를 건설하려는 시도에 대해 미국이 반격한 사건으로, 결국 소련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당초 계획을 무효화하면서 미국과 타협하기에 이르렀고 양국이 평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남준은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불과 몇 달 전에 일어났던 이 쿠바 사태로부터 모티프를 얻어서, 녹음기의 음파가 진동할 때마다 TV 모니터의 파장이 동조하도록 결합한 실험 텔레비전을 제작한 것이다. 전시장 다른 한 켠에는 “피델 카스트로와의 전쟁, 침략이 시작되다”라는 헤드라인의 1961년 4월 16일자 『빌트자이퉁』 신문이 금장 액자로 표구되어 있었고 이 액자 양 옆으로 독일과 터키, 영국과 덴마크의 국기가 얼룩이 묻은 채로 전시되어 있었다. 플럭서스 동료작가인 앨리슨 놀즈의 작품이다. 백남준은 놀즈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여성 화가의 연대기>를 썼는데 이 스코어는 매달 생리혈로 각기 다른 국기를 물들이고 이 국기들을 갤러리에 전시하라는 지시문이다. 놀즈는 《음악의 전시》를 위해 이 스코어를 실연하여 국기 네 점을 제공하였다.
사진16. 백남준, <거울 같은 호일, 서재>,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7. <거울 같은 호일, 서재에 있는 백남준>,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이렇게 음악과 텔레비전을 중심축으로 구성된 백남준의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은 따로 정해진 공간만을 이용하여 전시를 한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갤러리 파르나스 2층부터 지하에 이르는 건물 내부와 야외 정원까지 폭넓게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다. 갤러리 2층 서재로 사용되던 방에는 각종 금속박 조각들을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늘어뜨려 놓고 백남준은 이를 <옷을 벗고 네 자신을 보라>라고 명명했다. 반사 은박지를 말아 주변 공간이 은박지에 비치는 모습이 전체 정물화를 이루도록 작업하던 에드 키엔더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은색뿐만 아니라 금색, 적색의 박지도 사용하고 일부는 꾸깃꾸깃한 상태로 만들어 서재에 설치한 후, 관람객이 문을 잠근 채 알몸으로 박지들 사이에 서서 그 얇은 박지에 비춰지는 자신의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내도록 하였다. 방 한가운데에 위를 향해 놓인 온풍기 덕분에 관람객들은 다리 사이로 따뜻한 바람도 느낄 수 있었다.
사진18. <장치된 화장실>,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총체피아노>가 설치된 방의 바닥 곳곳에도 반사 은박지 조각이 널려 있고 그 위에 바이올린이 놓이기도 했으며, 일부 실험 텔레비전 앞 바닥에 놓인 거울들도 주변의 사물과 사람을 비추는 ‘자기 반영’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거울은 갤러리 파르나스의 화장실에도 등장했는데 보통 세면대 위에 있는 평범한 거울이 아니었다. 바로 백남준의 <장치된 화장실>이다. 화장실 변기 앞에 거울이 있고 머리 위에는 석고 두상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관람객이 그 석고 두상과 정수리를 맞대고 변기 위에 앉는다. 그리고 앞쪽의 거울을 보면 눈 네 개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백남준은 자신이 어릴 적에 몇 시간이고 화장실에 앉아 『슈피겔』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 적 있으며, 1965년에 쓴 <교향곡 5번> 스코어에는 다음과 같이 적기도 했다. “1월 3일 14시 68분 − 21시 00분 08초: 이 천재처럼 ‘장치된’ 변기에 앉아서 일곱 시간 동안 보들레르 전집을 읽어라. 혹은 변기에 앉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스토옙스키)을 읽기 시작해서 다 읽기 전에는 나오지 마라!!” 이 구절 옆에는 《음악의 전시》에서 <장치된 화장실>에 앉아 있는 페터 브뢰츠만의 사진과 함께 전시 리뷰가 실린 1963년 3월 15일자 부퍼탈 지역신문 기사가 붙어 있다.
사진19. <계단에 앉은 백남준>,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은 제목이 명백하게 지시하듯 청각 매체와 시각 매체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백남준이 음악가에서 미디어 아티스트로 나아가게 된 분수령이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계속 발전함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는 온 신체의 지각에 관여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변화를 생각할 때 1963년 백남준이 구현한 감각의 혼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래 음악적 태생인 사물들이 다감각적 경험을 일으키도록 고안된 전시작들뿐만 아니라, 음악과 상관없는 다양한 사물들이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렸다. 계단에는 칸마다 플라스틱 병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서 밟으면 찌그러지면서 소리를 냈고, 놓여 있는 전화기로 통화 혹은 대화도 가능했다. 심지어 벽에 설치되어 있는 부조는 얼굴로 느껴보도록 되어 있었다. 백남준이 이렇게 공간의 구석구석을 활용하여 일상의 오브제를 삽입한 기획은, 이 안에서 선보인 그의 실험 텔레비전이 전자 매체를 단순히 예술적으로 개조한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를 관람자의 신체가 거주하는 하나의 환경으로 개념화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전자적 회로부터 건물의 장소까지 모두를 재료로 하여 백남준이 음악과 미술 사이에 구축한 이 공간에서, 둘 사이의 상응 가능함과 불가능함 속에서, 새로운 미디어 아트는 움트기 시작했다.
글쓴이 : 김성은
미술관과 현대미술 이론,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기획자이다. 미디어 아트에 있어 사물과 신체의 작용, 지식 수행의 장으로서 미술관의 감각적 차원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며 미술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일했고, 현재는 리움에서 교육, 공공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사진1. 백남준, <총체피아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2. 백남준, <총체피아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3. <총체피아노를 치는 롤프 예를링>,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갤러리의 중앙 홀에는 고전 음악의 상징인 피아노 네 대가 <총체피아노>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다. 그런데 이 악기들은 피아노 본래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연주’되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두 대는 전면 케이스를 떼어내고 건반과 현 곳곳에 갖가지 사물들을 매달거나 부착하거나 끼워 놓았고 이들은 전선으로 뒤엉킨 채 연결되어 있었다. 인형 머리, 호루라기, 뿔피리, 깃털 장식, 철조망, 숟가락, 동전 더미, 잡동사니 장난감, 사진, 브래지어, 아코디언, 최음제, 전축 팔, 맹꽁이자물쇠, 분리된 건반 지렛대 등. 관람객은 자유롭게 이 피아노들을 연주해 볼 수 있었는데, 건반을 누르면 생소한 소리가 들리거나 장치된 사물들이 움직이거나 주변의 조명등, 사이렌, 환풍기, 녹음기, 라디오 등이 작동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대는 일명 ‘아서 쾨프케를 위한 피아노’로, 쾨프케가 <닫힌 책들>에서 책의 페이지들을 풀로 붙여 읽을 수 없게 만든 것처럼 백남준은 피아노 현 부분에 널빤지를 넣고 닫아서 건반이 눌리지도, 현이 진동하지도 않도록 만들었다.
사진4. 백남준, <총체피아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5. 백남준, <총체피아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총체피아노> 중 이바흐 피아노 한 대는 문짝과 해머를 떼어내고 뒷면이 바닥에 닿게 눕혀져 건반의 위아래 현이 모두 노출되어 있었다. 원래 백남준의 의도는 관람객이 그 위에 올라가서 걷거나 뛰면서 발로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시 개막일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나타난 요셉 보이스가 눕혀 놓은 이 피아노에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러 피아노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백남준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누구도 미리 알지 못했던 해프닝이었지만 백남준은 이 즉흥극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고 기억했다. 전시 공간과 작품들을 관리 중이던 몬트베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양동이의 물을 보이스에게 끼얹었다고도 전한다. 이 피아노는 전시 기간 동안 그 상태로 방치되었고 관람객들은 부서진 피아노를 구경하기도 하고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 피아노는 갤러리 주인인 예를링의 도움으로 조달한 것이었는데, 엥겔스 가문과 함께 부퍼탈의 명문인 이바흐가로부터 직접 구한 오래된 이 피아노에 대해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만일 그 피아노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면 보이스의 첫 피아노 작품이기에 엄청난 가격에 팔릴 것이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없었던 우리는 두 동강이 난 피아노를 이바흐 가족에게 돌려주었고, 그들은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1986)
사진6. <백남준의 랜덤엑세스를 시연하는 페터 브뢰츠만>,,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7. 백남준, <랜덤엑세스>,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를 전시한 이 <총체피아노> 구역을 지나 지하실로 내려가면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들을 이용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먼저 두 개의 무릎 높이 대 위에 수평으로 60cm 길이의 판지 롤러가 모터로 돌아가고 있다. 롤러 위를 폭 50cm의 천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는데, 천 위에는 스풀로부터 풀어낸 녹음테이프를 여러 길이의 조각들로 붙여 놓았다. 이렇게 두 벌의 천 컨베이어 벨트가 놓여 있는 사이 중간 벽면에도 마치 복잡한 도로 지도 모양처럼 보이게 테이프 조각들을 붙여 놓았다. 이제 관람객은 재생 장치에서 분리된 금속 헤드로 이 설치물들에서 원하는 테이프 부분을 훑어 녹음된 소리를 듣는 것이다. 훑는 속도나 방향에 따라 비틀린 전자음악 같은 갖가지 소리가 났다. 기계가 순차적으로 재생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직접 몸을 움직여 임의의 원하는 부분을 듣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 작품은 <랜덤액세스>라고 불렸다.
사진8. 백남준, <음반꼬치>, 1963, 40.2×30.4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9. 백남준, <음반꼬치>, 1963, 40.2×30.4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0. 백남준, <입으로 듣는 음악>,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같은 지하실 공간에는 레코드플레이어를 이용한 작품도 있었다. 앰프, 스피커 기능이 있는 라디오 위에 턴테이블이 갖춰진 레코드플레이어 한 대가 조립돼 있다. 턴테이블의 축이 1미터 정도 높이로 위를 향해 길게 뻗어 있고 회전하는 이 축에 열 장의 레코드판을 꼬치에 꿰듯 임의의 간격으로 끼워 쌓았다. 그 옆에는 유사하게 기둥에 꿰어진 더미가 있고 이 꼬치는 첫 번째 꼬치와 고무벨트로 연결되어 같은 속도로 회전한다. 이렇게 두 개의 꼬치로 구성된 설치물이 두 벌 있었고, 관람객은 마그네틱 카트리지의 톤암을 들고 레코드판의 원하는 곳을 긁어 소리를 들었다. 음반들을 마치 케밥 꼬치처럼 꿰어 놓은 모양에서 <음반꼬치>라는 제목을 붙였다. 턴테이블과 레코드판은 다소 은밀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골동품에 가까운 레코드플레이어에서 카트리지를 분리해 모조 페니스처럼 보이는 장치를 끼우고 바늘을 레코드에 얹어 재생시킨다. 그 모조 페니스를 입에 물고 느껴지는 음반의 진동으로써 음악을 듣는 것이 바로 <입으로 듣는 음악>이다. 몬트베의 회고에 따르면 백남준이 특별히 찍어두고 싶은 사진이 있다고 요청하였고, 보는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에 백남준이 직접 이 <입으로 듣는 음악>을 연출하는 가운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소리를 내는 신체기관인 입을, 소리를 듣는 기관으로 치환하면서 성적인 암시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진11.<TV 수상기에서 앞에서 일하고 있는 백남준>,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2. <텔레비전 방에 있는 토마스 슈미트>,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3. 백남준, <TV 5> ,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전시의 또 다른 한 축인 텔레비전 작업은 <총체피아노>에 비해 당시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백남준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텔레비전 작업은 기억하지 못하고 소머리에만 정신이 팔렸다고 한탄한 적도 있다. 갤러리 입구에 진짜 소머리를 걸어두었다가 전시 개막 직전 보건법 위반으로 경찰에 의해 철거당한 소동을 말한다. 비록 관람객들의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백남준은 이 전시에 실험 텔레비전을 소개하기 위해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회로 연구에 매진했었다. 그렇게 해서 미리 만들어 가지고 온 텔레비전도 있었고, 전시장에서 TV 수상기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원하는 화면이 나올 때까지 내부 회로 변조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것도 있었다. 그 결과물로 선보이게 된 13대의 실험 텔레비전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왜곡하여 화면 이미지를 변형시킴으로써 같은 화면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은 한 대도 없었다.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사전에 내부 회로를 물리적으로 조작하고 전자기적 신호를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동일한 방송 채널의 화면이 네거티브로 보이거나 가로 줄, 세로 줄, 혹은 여러 형태의 곡선이 화면을 방해하여 왜곡되어 보이도록 하는 텔레비전이다. 두 번째 종류는 텔레비전에 외부 장치를 연결하여 관람객의 참여에 의해 어떤 화면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연결된 페달을 밟거나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내면 이에 반응하여 화면에 불꽃같은 이미지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또 각각 녹음기와 라디오가 연결된 텔레비전은 흘러나오는 음악과 라디오의 볼륨에 따라 화면이 달라지는 식이다. 마지막은 고장이 나서 화면에 가로선 하나만 나타나는 텔레비전으로 백남준은 이를 그대로 전시장으로 가져와 옆으로 세워 세로선으로 보이도록 놓았고, 고장 난 또 한 대의 텔레비전은 아예 엎어 놓고 ‘렘브란트 오토메틱’이라는 상표를 부각시켰다. 몬트베는 이 실험 텔레비전들의 화면이 빠르게 지나가버리거나 계속 바뀌었고 상태가 불안정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를 사진으로 찍는 것이 당시로서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사진14. 백남준, <쿠바 TV>,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5. 백남준, <‘아름다운 여성 화가의 연대기’를 위한 앨리슨 놀즈의 국기>,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기술적인 실험에만 매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또 사회의 여러 차원에 침투하는 대중매체의 정치적 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실험 텔레비전 중에는 <쿠바 TV>라는 제목의 수상기가 있었는데 녹음기와 연결된 텔레비전으로 흘러 들어오는 음악의 주파수에 따라 보이는 이미지가 달라지도록 한 것이다. 제목의 ‘쿠바’는 1962년 10월 22일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제 군사 무기의 쿠바 수송 봉쇄 명령을 내리면서 핵전쟁 발발 위기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던 사건인 쿠바 미사일 위기를 암시한다. 소련이 쿠바 혁명을 지지하면서 쿠바에 핵탄두 미사일 발사 기지를 건설하려는 시도에 대해 미국이 반격한 사건으로, 결국 소련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당초 계획을 무효화하면서 미국과 타협하기에 이르렀고 양국이 평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남준은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불과 몇 달 전에 일어났던 이 쿠바 사태로부터 모티프를 얻어서, 녹음기의 음파가 진동할 때마다 TV 모니터의 파장이 동조하도록 결합한 실험 텔레비전을 제작한 것이다. 전시장 다른 한 켠에는 “피델 카스트로와의 전쟁, 침략이 시작되다”라는 헤드라인의 1961년 4월 16일자 『빌트자이퉁』 신문이 금장 액자로 표구되어 있었고 이 액자 양 옆으로 독일과 터키, 영국과 덴마크의 국기가 얼룩이 묻은 채로 전시되어 있었다. 플럭서스 동료작가인 앨리슨 놀즈의 작품이다. 백남준은 놀즈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여성 화가의 연대기>를 썼는데 이 스코어는 매달 생리혈로 각기 다른 국기를 물들이고 이 국기들을 갤러리에 전시하라는 지시문이다. 놀즈는 《음악의 전시》를 위해 이 스코어를 실연하여 국기 네 점을 제공하였다.
사진16. 백남준, <거울 같은 호일, 서재>,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사진17. <거울 같은 호일, 서재에 있는 백남준>,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이렇게 음악과 텔레비전을 중심축으로 구성된 백남준의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은 따로 정해진 공간만을 이용하여 전시를 한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갤러리 파르나스 2층부터 지하에 이르는 건물 내부와 야외 정원까지 폭넓게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다. 갤러리 2층 서재로 사용되던 방에는 각종 금속박 조각들을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늘어뜨려 놓고 백남준은 이를 <옷을 벗고 네 자신을 보라>라고 명명했다. 반사 은박지를 말아 주변 공간이 은박지에 비치는 모습이 전체 정물화를 이루도록 작업하던 에드 키엔더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은색뿐만 아니라 금색, 적색의 박지도 사용하고 일부는 꾸깃꾸깃한 상태로 만들어 서재에 설치한 후, 관람객이 문을 잠근 채 알몸으로 박지들 사이에 서서 그 얇은 박지에 비춰지는 자신의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내도록 하였다. 방 한가운데에 위를 향해 놓인 온풍기 덕분에 관람객들은 다리 사이로 따뜻한 바람도 느낄 수 있었다.
사진18. <장치된 화장실>,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총체피아노>가 설치된 방의 바닥 곳곳에도 반사 은박지 조각이 널려 있고 그 위에 바이올린이 놓이기도 했으며, 일부 실험 텔레비전 앞 바닥에 놓인 거울들도 주변의 사물과 사람을 비추는 ‘자기 반영’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거울은 갤러리 파르나스의 화장실에도 등장했는데 보통 세면대 위에 있는 평범한 거울이 아니었다. 바로 백남준의 <장치된 화장실>이다. 화장실 변기 앞에 거울이 있고 머리 위에는 석고 두상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관람객이 그 석고 두상과 정수리를 맞대고 변기 위에 앉는다. 그리고 앞쪽의 거울을 보면 눈 네 개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백남준은 자신이 어릴 적에 몇 시간이고 화장실에 앉아 『슈피겔』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 적 있으며, 1965년에 쓴 <교향곡 5번> 스코어에는 다음과 같이 적기도 했다. “1월 3일 14시 68분 − 21시 00분 08초: 이 천재처럼 ‘장치된’ 변기에 앉아서 일곱 시간 동안 보들레르 전집을 읽어라. 혹은 변기에 앉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스토옙스키)을 읽기 시작해서 다 읽기 전에는 나오지 마라!!” 이 구절 옆에는 《음악의 전시》에서 <장치된 화장실>에 앉아 있는 페터 브뢰츠만의 사진과 함께 전시 리뷰가 실린 1963년 3월 15일자 부퍼탈 지역신문 기사가 붙어 있다.
사진19. <계단에 앉은 백남준>, 1963, 30.4×40.2cm, 흑백 사진 사진 : 만프레드 몬트베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은 제목이 명백하게 지시하듯 청각 매체와 시각 매체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백남준이 음악가에서 미디어 아티스트로 나아가게 된 분수령이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계속 발전함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는 온 신체의 지각에 관여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변화를 생각할 때 1963년 백남준이 구현한 감각의 혼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래 음악적 태생인 사물들이 다감각적 경험을 일으키도록 고안된 전시작들뿐만 아니라, 음악과 상관없는 다양한 사물들이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렸다. 계단에는 칸마다 플라스틱 병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서 밟으면 찌그러지면서 소리를 냈고, 놓여 있는 전화기로 통화 혹은 대화도 가능했다. 심지어 벽에 설치되어 있는 부조는 얼굴로 느껴보도록 되어 있었다. 백남준이 이렇게 공간의 구석구석을 활용하여 일상의 오브제를 삽입한 기획은, 이 안에서 선보인 그의 실험 텔레비전이 전자 매체를 단순히 예술적으로 개조한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를 관람자의 신체가 거주하는 하나의 환경으로 개념화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전자적 회로부터 건물의 장소까지 모두를 재료로 하여 백남준이 음악과 미술 사이에 구축한 이 공간에서, 둘 사이의 상응 가능함과 불가능함 속에서, 새로운 미디어 아트는 움트기 시작했다.
글쓴이 : 김성은
미술관과 현대미술 이론,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기획자이다. 미디어 아트에 있어 사물과 신체의 작용, 지식 수행의 장으로서 미술관의 감각적 차원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며 미술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일했고, 현재는 리움에서 교육, 공공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