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 미래를 투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명한 미래학자 허먼 칸은 중요한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2000년에 관한 그의 연구는 여러 재단의 도움으로 출판되었다. 하지만 1967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칸은 자연보호니 환경오염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히피들은 같은 해에 이미 자연보호를 주장했다.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인 칸이 길거리의 히피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어 1971년에 칸은 1970년대에 관한 연구 서적을 출간한다. 이때도 역시 에너지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래학자로 행세하고 있다.
미래를 사유한다는 것은 미래에 실현 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떠올리는 일인데, 그중에는 핵융합의 성공 여부도 포함된다. 성공한다면 1962년처럼 에너지가 매우 저렴해질 것이다. (그 경우, 오염 문제만 해결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태양에너지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핵융합 분야만이 미국인과 러시아인이 협력하는 유일한 분야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것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핵융합은 신을 모방하는 것과 같다. 비디오테이프로 모든 걸 녹화하고 보존하면서 우리는 신의 절반을 모방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삶을 되감기할 수는 없다. 비디오테이프 녹화기에는 ‘빨리 감기’ ‘되감기’ ‘정지’ 버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공영채널에서 7시 저녁 뉴스 전에 9시 TV 영화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신에 대적할 만한 기계인 베타맥스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인생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내가 47세에 뉴욕에서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살리라는 것을 25세 때 알았다면 계획을 다르게 세웠을 것이다. 삶에는 ‘빨리 감기’나 ‘되감기’가 없기에 앞날을 전혀 예견할 수 없다. 그러니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실수를 저지르면 그 실수를 만회하려다가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는 비용을 지급하면서 교사들을 고용한다. 왜냐하면 베타맥스처럼 그들은 ‘빨리 감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의접속의 개념을 생각해 보자.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와 임의접속이 가능한 정보는 횟수에서 차이가 난다. 책은 임의접속이 가능한 정보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비디오가 지루하고 TV가 형편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녹화와 정보 횟수 시스템에서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를 잘 다루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 아직은 새로운 분야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정보가 가득 차 있어도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항목이건 어느 페이지건 원하는 곳만을 골라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A 혹은 B, C, M, X 아무 알파벳이나 마음대로 펼칠 수 있다. 반면 비디오테이프나 TV는 A, B, C, D, E, F, G 등 만들어진 순서대로 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매우 단순한 비교 같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로 인해 전자 정보가 임의 접속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때까지 책은 여전히 유용할 것이다.”
– 1980년 3월 25일 뉴욕 Museum of Modern Art 강연 <임의접속정보> 중에서. – 한국어 출처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 (2010 백남준아트센터) pp.1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