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30일
불프 헤르조겐라트, 박상애
백남준아트센터
전 브레멘 미술관 관장 불프 헤르조겐라트 박사는 세계에서 백남준을 가장 잘 아는 큐레이터 중 하나로 꼽힌다. 1976년 백남준의 유럽 첫 회고전을 기획했던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백남준은 어떤 사람일까? 비디오 아트 큐레이터 1세대인 그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생각하는 백남준의 미술사적 의미와 친구로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함께 나누어 보자.
헤르조겐라트 박사는 28세에 최연소로 독일 미술협회의 수장이 되었고, 베를린 국립 미술관을 거쳐 브레멘 미술관 관장으로 17년간 재직하다 2011년 은퇴하였다. 바우하우스 작가 오스카 슐레머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폴크방 미술관에서 우연한 기회에 인연을 맺은 비디오 아트를 시작으로 평생 동안 근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전시들을 기획하였다. 특히 백남준과의 특별한 인연은 1974년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는 백남준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조력한 큐레이터 중 하나가 되었다. 헤르조겐라트 박사는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를 새롭게 정의한 작가로 칭한다. 백남준은 최초로 텔레비전을 사용한 비주얼 아트를 시도 했으며, 샬롯 무어만이라는 첼리스트를 통해 살아있는 조각Living Sculpture이라는 개념을 유도해 내기도 했다.
존 케이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음악에 있어서도 백남준은 음악으로 만은 표현할 수 없는 감성을 가졌고, 결국 시각예술과 결합한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빠른 판단력과 현명함을 가지고 있던 백남준은 새롭게 시도한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가 되었고, 그의 독창적인 창의력을 협업을 통해 구현해 내며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백남준은 누구보다 독특하고 유연하였으며, 실험적이고 관대한 사람이었다. 항상 괴짜처럼 보였지만, 백남준의 천재성은 일찍이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오리기날레›에서 인정받아 작품 중 유일하게 정해진 스코어가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펼치는 특권을 누렸다. 또한 그의 작품 ‹물고기 하늘을 날다›가 미술관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 받았을 때 작품의 구조로 인한 화재가 아니라 전선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끝까지 파헤쳐 증명하는 진지함을 가지고 있었다. 화재의 원인이 비디오 설치 작품이었다는 오해가 남아있었다면, 아마 오늘날 미술관들의 컬렉션 현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 지도 모를 일이겠다.
헤르조겐라트 박사에게 백남준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천재 예술가가 아니라, 아직도 그 옆에서 살아있는 유쾌한 친구이다. 백남준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던 헤르조겐라트 박사의 눈망울은 친구와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장난꾸러기 소년의 그것이었다. 세계적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은 오늘도 그의 작품을 통해, 그리고 그의 친구의 기억을 통해 우리 곁에 살아있다.
- 서문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 프롤로그 박상애 (백남준아트센터 아키비스트)
- 인터뷰 I
- 인터뷰 II
- 백남준 로봇에서 보이는 반기술적 기술 불프 헤르조겐라트
- 약력
ISBN 978-89-97128-06-8 93600
판매가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