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단행본]『백남준 : 말馬 에서 크리스토까지』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백남준아트센터 단행본
『백남준 : 말馬 에서 크리스토까지』

故 백남준 추모 13주기 故 백남준 추모 13주기
장 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를 시연 중인 백남준, 1978
(사진 : 만프레드 레베)
저자
백남준
편집
에디트 데커, 이르멜린 리비어
역자
임왕준 정미애 김문영 이유진 마정연
가격
20,000원
쪽수
447쪽
규격
480×210mm
발행처
(재)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는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백남준의 글모음집인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의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2010년 초판을 찍은 지 8년 만으로 그동안 백남준 연구자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이 책은 초판에 원문만 실렸던 5편의 번역문을 추가하고 원고 일부를 교체하는 등 조금 더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개정판 개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의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백남준의 책’인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는 백남준 연구자인 이르멜린 리비어(Irmeline Lebeer)와 에디트 데커(Edith Decker)가 미국, 유럽, 한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백남준의 글들을 모아서 공동으로 편집한 앤솔로지 북의 한글 번역본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누구보다 먼저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사유하고 실천했던 백남준의 예술세계에 생생한 백남준의 목소리를 통해 다가갈 수 있다.

백남준은 “미래의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심령력”이라고 했다. 그래서 심령력이 강한 집시의 나라, 불가리아 출신의 친구 크리스토가 미래에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심령력을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면 아날로그 소통을 지나 디지털 소통이 가능한, 더 나아가 세상 만물이 상보적으로 얽히는 양자(quantum) 소통이 가능한 미래의 세상을 암시한다. 백남준은 미래의 사회에서는 기술과 인간이 완전히 융합되며 사회 소통 시스템이 자연적 환경에서 영성적 환경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예술로써 예견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인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는 백남준 예술 세계의 중요한 축인 인간·자연·기술 간의 상호 소통과 융합에 대한 종적인 역사성과 횡적인 문화 다양성의 A부터 Z까지를 담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백남준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많은 이들의 노력이 모인 이 책은 세상 만물의 수평적 소통과 연계를 통해 상생의 미래를 소망했던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교과서적 도서라 자부한다. 2018년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의 개정 사항은 다음과 같다.

이번 개정판에는 초판에 원문으로 실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시나리오(팩스자료)를 비롯하여 「바이바이키플링」, 「록음악에 스포츠」, 「비디오테이프 월간지」 등 5개의 글을 번역해 게재하고 본문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던 「아사테라이트- 모레의 빛을 위하여」의 원문(일문)을 찾아 전문을 번역해 게재하였다.

이 책은 태생적으로 중역을 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 개정판에서는 초판의 아쉬운 점을 보강하고자 최대한 원문을 찾아 대조하여 중역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했다. 또한 백남준에 관한 연구가 미진해 발생한 번역의 오류도 수정하였다. 백남준아트센터는 개관 이후 10년 동안 ‘인터뷰 프로젝트’, ‘백남준의 선물: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꾸준히 열고 연간 학술지 «NJP리더»를 발간하는 등 많은 연구자들과 함께 자료를 수집하며 백남준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연구와 자료들은 다소 미진하더라도 초판의 오류를 잡을 수 있는 역량의 기반이 되었다.

이번 개정판의 발행으로 최근 다시 높아지기 시작한 백남준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관심과 요구에 부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백남준의 작업은 지극히 미래지향적이었으며, 그는 20세기에 이미 21세기의 언어와 문화를 이야기해왔다. 신기하게도 그의 작업은 접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기에 상대적으로 그의 작업에 대한 이해와 인식에 대한 갈증 또한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연구자에게 불만족과 미숙함을 각성시키는 그의 천진스러운 유산들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그의 예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무한한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백남준의 정신세계가 온전히 담겨진 이 책이 백남준의 예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 전문가 서평
<백남준: 말馬 에서 크리스토까지> 개정판에 부쳐
김홍희(전 시립미술관장/ 미술평론가)
백남준아트센터가 펴낸 <백남준: 말馬 에서 크리스토까지>(2010 초판/2018 개정판)는 그가 왜 백남준인지를 말해주는 진솔한 자전적 수필집이자, 작가의 철학적, 예술적, 인간적 실체를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집이다. 독일 아방가르드 서클에 데뷔했던 1958년부터 60회 생일을 맞는 1992년까지 친지와 동료들에게 보낸 서한, 작품 악보, 단상, 논고들을 싣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가 20세기의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시대를 초월하는 고결한 비저너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편집자들인 이르멜린 리비어와 에디트 데커는 책제목으로 백남준의 1981년 논고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를 인용하고 있다. 이 문구가 백남준의 사상을 요약, 대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남준은 이 글에서 과거 운송과 통신의 화신이었던 말(馬)에서, 오늘날 텔레비전/비디오 시대를 거쳐, 미래의 강력한 소통 수단이 될 ‘심령력’에 이르는 미디어의 역사적 변화 또는 진화적 발전을 은유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백남준은 집시의 고장으로 심령력의 지수가 가장 높은 불가리아 출신의 크리스토를 미디어 소통의 종착역에 위치시키고 있다. 요셉 보이스의 유라시안 신비주의, 한국 샤머니즘 문화에도 해당될 수 있는 이 심령력의 의미는, 소통 매체가 영적 매체로 확장 또는 병치되는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샤먼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다.

미디어에 대한 샤먼적 해석은 백남준 예술의 핵심 개념인 불확정성(비결정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서양의 결정주의에 대립되는 동양의 비결정주의, 구체적으로는 선사상과 샤머니즘 정신에 내재된 불확정성은 복합성, 융합성, 가변성, 유동성, 특히 우연성에 대한 미학적 사유와 맞닿아 있는 개념이다. ‘우연은 준비된 정신만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라는 파스퇴르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그의 행위음악, 해프닝, 비디오아트는 모두 통제 불가능한 우연과 사고, 삶과 같은 불확정성에 근간하고 있다. 그는 비디오합성기를 통해 ‘고도의 정확성 대신 고도의 불확정성’을 획득하였고, 전 지구를 연결하는 생방송 위성예술이나 멀티모니터 작품들에서와 같이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는 다다익선 미학으로 불확정적 융복합 예술을 성취하였다. 실로 그는 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컨버전스(convergence)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이 책에는 웬만한 대하장편소설을 방불케하는 다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19∼20세기의 역사적 현학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만나고 교류한 과학자, 철학자, 미술가, 음악가, 무용가, 시인, 방송인, 큐레이터, 비평가 등, 그의 광대한 인맥은 그 자체가 광대역과 같은 정보통신의 플랫폼이자, 케이블로 연결된 ‘상상적 비디오 경관’ 즉 ‘글로벌 그루브’이다. 보들레르적 ‘코레스퐁당스(Correspondence) 의지, 소통과 변화에 대한 갈증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록 독려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사람에 대한 순수한 관심, 인물을 알아보는 통찰력과 예지력, 만남을 귀중한 인연으로 발전시킬 줄 아는 친화력과 동화력, 동료들과의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열정과 탁월한 기획력이 백남준의 작가적 성공을 뒷받침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남준은 이 책에서 플럭서스 친구들인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조지 머추너스, 샬럿 무어먼 등의 예술세계를 소상히 그리고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에 대해 슬픔과 연민을 감추지 않는다. 그는 치열한 예술가, 치밀한 기획자이기 이전에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 끈끈한 정을 가진 틀림없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백남준의 최초 에세이 선집은 1974년 시라큐즈 에버슨 뮤지엄이 발행한 『백남준: 비데아 ‘n’ 비디올로지 1959-1973』 였다. 이번 책은 그 당시 그 책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되살려주고 그의 귀환을 실감케 해준다. 이에 대해 백남준아트센터에 개인적으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덧붙여 센터가 앞으로 1992년 이후부터 2006년 타계할 때까지 그의 후기 시대 친필을 모으고 출판하여 백남준의 예술과 삶을 하나의 순환 고리로 집대성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 전문가 축하평
2016년, 백남준아트센터의 백남준 추모 10주기 특별전 『다중시간』을 통해 백남준과 인연을 맺은 뇌 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인간과 기계의 공생을 전망한 선구적 예술가 백남준을 기억하며 다음의 글을 보내왔다.

“ 날카로운 이빨도, 두꺼운 비늘도 없이 오로지 세상을 이해하는 지적 능력 하나만으로 지구를 지배한 호모 사피엔스. 이제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를 만들고 있는 우리는 질문해야한다: 언젠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과 인공 창의성으로 무장한 기계들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고, 시를 쓰지 않을까? 예술의 미래는 기계들의 몫이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미래 ‘예술기계’들은 결론을 내릴지 모른다.
인간의 예술과 기계의 예술 사이에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백남준의 예술이 있었다고. 비디오아트에서 사이버펑크, 다다이즘에서 테크놀로지……그의 예술은 바로 기계와 인간의 사이에 있으며, 동시에 인간의 예술이 기계의 예술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글을 모음집 『백남준: 말馬 에서 크리스토까지』 개정판 출간을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한다. ”
■저자소개
백남준은 1932년 7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나 2006년 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무음악(a-music)을 추구했던 현대음악 작곡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네오 아방가르드의 한축이었던 플럭서스의 주역,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의 발명가, 최초로 상업네트워크 방송망을 이용한 네트워크 아트와 지구 도시를 연결한 위성아트의 선구자였다. 특히 위성아트 <굿모닝 미스터오웰>(1984)과 <바이바이 키플링>은 전 세계 2500만 명이 시청했다. 그의 예술은 인간과 비인간을 비위계적으로 통합하여 21세기 예술의 선구적 장을 열었다.
■역자소개
임왕준
연세대학교 불문과 졸업,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앙드레 말로에 대한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파리 8대학 철학박사 과정에서 엠마누엘 레비나스를 전공했다. 문화부 홍보조정실에서 근무했고 전주방송국(JTV) 제작평성부장으로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샘터사 주간으로 일했다. 창작집 『북회귀선』을 출간했으며, 번역서로는 『사는 법을 배우다』, 『메피스트로펠레스와 양성인』(공역), 『지식인은 왜 자유주의를 싫어하는가』 『이별의 기술』등이 있다.

정미애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벵대학에서 불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번역서로는 『치유』,『행복의 역설』,『세잔을 위한 진혼곡』,『스크래치』,『누가 랭보를 훔쳤는가』,『마지막 수업』등이 있다.

김문영
가톨릭대학교와 프랑스 낭시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와 한국의 다국적 기업을 거쳐 음악과 영화 등의 문화평론가로 일했다. 번역서로는 『마지막 눈』,『조용히 흐르는 초록빛 강』,『마지막 편지』,『걷기의 기적』, 등이 있으며 현재 출판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이유진
중앙대학교에서 불문학을, 프랑스 부르고뉴대학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한 후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로 일했다. 주요 전시로 《부드러운 교란, 백남준을 말하다》, 《백남준 탄생 80주년: 노스텔지어는 피드백의 제곱》(공동기획) 등이 있다.

마정연
도쿄예술대학에서 박사학위(영상미디어학)를 취득한 뒤 메이지대학 국제 일본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일본 미디어아트사』가 있다.
■밑줄긋기
나는 TV로 작업하면 할수록 신석기시대가 떠오른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는 놀랄 만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바탕을 둔 정보 녹화 시스템에 연결된 기억의 시청각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는 노래를 동반한 무용이며, 다른 하나는 비디오다… 나는 사유재산 발견 이전의 오래된 과거를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 비디오아트는 신석기시대 사람들과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비디오는 누가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다. (107쪽)

아마도 인공위성의 최대의 효용은, 인류 간에 여지껏 없었던 상호관계(인연)을 인공적, 가속적으로 만들어내서 새로운 의식과 의식 사이의 신경적인 네트워크를 창출해 경제와 문화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바이 바이 키플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인연의 이야기, 혹은 겉에 드러나지 않아도 뒤에서 조용히 노력한 사람들, 이름없는 영웅들, 공신들을 다음에 소개해 두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정치는 뜻밖의 연관성을 만든다(129쪽)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 미래를 투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명한 미래학자 허먼 칸은 중요한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2000년에 관한 그의 연구는 여러 재단의 도움으로 출판되었다. 하지만 1967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칸은 자연보호나 환경오염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히피들은 같은 해에 이미 자연보호를 주장했다.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인 칸이 길거리 히피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205쪽)

1960년대 자유주의자와 1960년대 혁명가의 차이는 전자가 진지하고 회의적인 성향이었다면 후자는 낙관적이며 즐길줄 알았다는 겁니다. 누가 사회를 더 변화시켰을까요? 내 생각에는 후자입니다. (269쪽)

‘예술과 기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변화나는 전자표현방식인 기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281쪽)

사이버네틱스 예술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이버네이티드된 삶을 위한 예술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후자는 사이버네이티드될 필요가 없다. (315쪽)

영속적인 불만은 영속적인 진화이다. 이것이 나의 실험TV의 주요한 장점이다. (380쪽)
■초판 소개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는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백남준의 책’이다. 유럽의 뛰어난 백남준 연구자 이르멜린 리비어(Irmeline Lebeer), 에디트 데커(Edith Decker) 두 사람이 미국, 유럽, 한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백남준의 글들을 모아서 공동으로 편집한 앤솔로지 북의 한글 번역본이다. 번역은 정미애씨가 1차 번역을, 임왕준씨와 김문영씨가 2차 번역을 담당했다.

이 책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이 서구 예술계에서 평생 동안 추구해온 예술 세계의 바탕에 어떤 사상과 발상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기념비적 저작이다. 일종의 ‘백남준이 말하는 백남준’으로서 이 책은 편지, 악보, 팸플릿, 기사, 에세이, 시나리오, 논문, 인터뷰 등 다양한 타입의 글 78편이 수록되어 있다. 글 싣는 순서는 백남준의 삶의 시간을 ‘되감기(rewind)’하듯이 거꾸로 배치한 것이 이채롭다. 즉 시기적으로 현재와 가장 가까운 “미디어의 기억”(1992)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마침내 이 땅에 살았을 때 김소월의 시 <먼 후일>로 작곡했던 1947년의 조숙한 악보에서 끝이 난다. 이러한 목차 구성은 백남준의 삶이 유목민의 전형이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연어의 여행’과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순서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백남준식 용어를 따르면 ‘랜덤 액세스(임의접속)’의 방법으로 보는 방법을 권하고 있다. 자유와 인연, 이것이 백남준이 좋아했던 가치였다. 이 책은 단순히 백남준을 해명하기 위한 선집이 아니며, 한 특출난 예술가의 발상과 마주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영감의 서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말부터 서구의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이 넘쳐날 때, 비서구의 에너지와 소통의 철학을 표현하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추구했던 백남준의 진면목과 정면으로 마주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통속적인 평판으로만 알려져 있는 백남준의 핵심이 이 책에서 때로는 추리소설처럼, 때로는 밀도있는 산문처럼 다가올 것이다.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는 한국에서 백남준 연구의 본격적인 서막을 열어젖힐 만큼 강렬한 실험과 독창적인 모험의 기록이 가득하다. 그것은 “백남준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백남준이 선뜻 내보이는 자신의 다양한 면모와 관련된다. 즉 서구 아방가르드 음악계에 진입하기 위해 분투하던 음악청년 백남준, 13대의 실험 TV를 직접 다루면서 탄생시킨 비디오 아트의 내막을 들려주는 젊은 날의 백남준, 그리고 미국 공중파 TV 방송국을 넘나들면서 미국의 네트워크 전국망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예술로 나아가고 나중에는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촌으로 생중계되는 우주 오페라를 실현하는 풍운아 백남준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재미는 백남준 특유의 솔직함, 위트와 유머에 기인한다. 이 책은 곳곳에 TV나 비디오, 비디오합성기 같은 기계에 관한 전문적인 부분과 당시 서구 예술계에서 유명했지만 우리에게 낯선 예술가들의 이름이 즐비하게 나온다. 그런 점 때문에 몇몇 부분에서 난해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백남준이 다른 예술가들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는 재치있는 촌평과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매우 재미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백남준이 누구보다 에고가 없는 예술가라는 것이다. 즉 자기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것이 예술가의 ‘이기적 유전자’인데, 이 책의 화자는 항상 자기 아닌 타인을 이야기하면서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백남준은 21세기의 사상가이다.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는 기존의 인간을 넘어선 인간의 삶의 양식을 생각하고, 그런 바탕에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상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나 위성 아트처럼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예술 활동을 펼쳤는데, 그의 궁극적인 문제의식은 쏟아져 나오는 뉴미디어에 현혹된 타입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보편적인 삶의 문제, 삶 정치의 장 안에서 다루는 타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백남준은 우리 곁에 돌아올 것이다. 1984년 1월 1일 지구촌의 서막을 연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함께 그는 금의환향했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예술은 무엇인지,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꿈꾼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재창조해야 하는 것은 이 책의 출간 이후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유목민이자, 21세기 예술의 선구자로서 백남준을 알고 느끼기 위하여 이 책은 키-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