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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액세스
기간/ 2010.03.13(토) 10:00 ~ 2010.05.31(월) 17:00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2층 전시장 외

비디오가 지루하고 TV가 형편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녹화와 정보 횟수 시스템에서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를 잘 다루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 임의접속과 비디오를 접목하는 작업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비디오 분야에서 녹화테이프는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은 테이프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것을 디지털화해서 전자 종이에 기록하는 방법을 연구 중인데, 이렇게 되면 임의접속이 조금은 가능해지지 않을까?…

-백남준, 1980년 뉴욕 현대미술관 MOMA 강연‘임의접속정보’중에서-

전시내용

1963년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전시에서 소개되었던 백남준의 작품 ‘랜덤 액세스’는 벽에 기하학적으로 붙어있는 카세트 테이프 위에 관람객이 전자기로 긁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거나 막대에 꽂혀 있는 레코드를 관객이 임의로 선택해 듣고 했던 참여적인 작품이자 임의적인 사운드와 접속에 대해 이야기한 선구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랜덤 액세스’는 이 작품의 제목일 뿐 아니라 상호작용, 참여, 우연과 비결정성을 고려할 때 백남준 작품세계의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이자 중요한 논쟁점입니다. 이러한 백남준의 예술실천의 개념을 모티브삼아 개최되는 이번 전시 <랜덤 액세스>는 백남준 작품에 대한 자유롭고 비선형적인 접근을 통해 현대적 해석과 담론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는 역동적인 전시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작가 및 작품

참여작가

백남준, 김민정, 김희선, 마사 콜번, 박찬경, 볼프 포스텔, 브루스 나우만, 유리 스즈키, 이진원(a.k.a. 가재발), 안토넹 아르토, 양아치, 엑소네모, 일레나 알메이다, 임민욱, 지민희, 장영혜 중공업, 전미래, 최태윤, 클레이톤 캠벨, 타미 킴, 토마스 허쉬온 등

1. 총체 피아노, 1963

일상에 잠재하는 임의성과 비합리성
전미래, 김희선, 김민정, 유리 스즈키

백남준에게 있어 불확정성과 비선형성은, 인간의 이성과 이에 대한 우리의 맹목적 믿음을 넘어서서 삶과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이다. 1963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 전시되었던 백남준의 <총체 피아노>는 현실의 ‘피아노’의 형상에서 멀리 벗어남으로써 삶의 비선형적인 본질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일상적 삶에서 온 각 요소가 뒤섞여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다다/슈비터스적 적분을 시도하는 <총체 피아노>는, 아르토나 부조리극의 작가들이 시도했듯 다다적 절개와 재결합의 이미지가 주는 충격과 공포를 통하여 관객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이로써 근본적 욕망과 삶에 대한 충동을 건드린다. 현실을 ‘비틀어’ 현실의 실제 상황에서 멀리 벗어남과 동시에, 기존의 예술이 시도했던 ‘재현’을 뛰어넘어 삶의 본질을 ‘실재화’한다.

<총체 피아노>의 공간은 지하실과 방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집과 같이 구성되었다. 전시실에 입장하는 관객의 수와 대비하여 무작위적으로 연주되는 첼로 연주를 담은 김희선 작가의 은 무심코 올라선 바닥이 움직이도록 제작한 전미래 작가의 와 함께 이성적 통제의 한계와 무의식적 세계에 대한 암시로서 존재한다. 일상의 방과 같이 꾸며진 메자닌에는 유리 스즈키의 <음악 주전자>와 김민정 작가의 <숨쉬는 문>이 ‘현실 비틀기’를 재연하며 초현실주의적인 ‘이상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 공간은 백남준이 ‘음악의 전시’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감각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전시’함으로써 관객이 식료품 가게에 들어선 듯 개별 작품의 요소를 선택하여 그것을 입구의 <총체 피아노>의 이미지와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는, 상상력이 지배하는 작은 공간이 되고자 한다.

・ 전미래 , 2010
・ 김희선 , 2002
・ 김민정 <숨쉬는 문>, 2006
・ 유리 스즈키 <음악 주전자>, 2008

2. 랜덤 액세스, 1967-68

임의적 시간으로 가득한 인생
이진원, 엑소네모, 유리 스즈키, 지민희

백남준은 비디오를 통해 시간을 조작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시간에 굴복해버린 인생을 극복하고 싶어했다. 어쩌면 그는 아무데나 열어서 볼 수 있는 책, 키워드로 찾아 읽어볼 수 있는 사전처럼 비디오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인생을 경험해보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책의 낱장들을 이용한 설치작품인 지민희 작가의 <숲의 특징>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돋보인다. 또한 유리 스즈키는 백남준의 <랜덤 액세스>에 대한 경의로 레코드 판을 잘라서 레코드 바늘이 달린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트랙을 만들었다. 관객들은 트랙을 새롭게 만들 수도 있고, 자동차를 자유롭게 배치함으로 열린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사실 백남준의 예술은 시간과의 투쟁(struggle)이었다. 그는 수없이 시간을 녹화해서 붙잡으려 했고, 테이프를 빨리 돌려서 시간을 조작하려 했다. 그리곤 인생을 비디오 테이프처럼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것에, 인생이 비디오 테이프처럼 끝으로 갈수록 점점 빨라진다는 것을 한탄하기도 했다.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는 선형적이고 시간에 기반한 정보들이 저장되어 있는 오디오 릴과 무질서하게 헝클어진 오디오 테이프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헝클어진 테이프에서 보이는 것은 랜덤한 억세스이자 혼란스러움이다. 이렇듯 우리 인생에서 선형적인 시간과 랜덤한 시간은 공존한다… 둘 다 붙잡을 수 없다.

・ 이진원 (a.k.a. 가재발) , 2009
・ 엑소네모 , 2010
・ 유리 스즈키 <사운드 체이서>, 2008
・ 지민희 <숲의 특징>, 2010

3. 조곡 212, 1975

도시는 나무가 아니다
고든 마타 클락, 임민욱, 최태윤

도시는 나무가 아니다는 도시라는 거대 시스템 속에 개인들이 어떻게 다양한 주름과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분산된 네트워크 시대에도 통제를 원하는 권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예술가들은 이런 상황을 적극적인 방식으로 이용하거나 개발의 속도에 반대하여 사라져가는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 도시 공간은 무대가 되고 관람객들이 무대에 포섭되거나 능동적인 참여를 함으로써 또 다른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

백남준의 <조곡212>는 1975년 뉴욕 W-net 방송국에서 심야에 방영되었던 영상 시리즈로 백남준이 바라본 뉴욕을 전자적 콜라주로 보여준다. 그는 도시 개발과 미디어의 영향관계를 다룬 내용에서부터 워싱턴 스퀘어에서의 인터뷰, 이민자들이 모여있는 차이나타운의 국수가게까지 도시가 생동하는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준다. 고든 마타 클락의 <시계 샤워>에서는 뉴욕 도심에 있는 시계탑에 매달려 샤워를 감행하여 시계탑이라는 건축적 파사드를 일종의 극장으로 변환시킨다. 임민욱의 는 한강변을 중심으로 서울이라는 무대를 배우가 된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면서 ‘뜻하지 않은’ 사건들과 맞닥뜨리는 이동 극장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유람선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관람객들은 근대화, 산업화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기억들을 환기하며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불화들과 마주하게 된다. 최태윤의 <무대지시>는 도시 공간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무대를 도시로 가정하고 도시의 표피 이면에 있는 것들을 벗겨내고자 한다.

・ 고든 마타 클락 <시계 타워>, 1976
・ 임민욱 , 2009
・ 최태윤 <무대지시>, 2010

4. 우리는 개방 회로 속에 존재한다, 1966

사이버네틱스 사회의 사회적 역할
양아치

폐쇄회로와 감시자, 미디어의 세계는 일상의 세계와 분리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은 일상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즉각적으로 판옵티콘을 연상시키는 CCTV 화면이 닫혀있는 구조이고 과감한 편집과 컷팅이 가능한 랜덤 액세스의 세계인 사이버네틱스의 세계는 열려 있다는 피상적인 구조의 차이를 느끼게 할지라도 실은 그 안에 내재한 사이버네틱스 기술의 근본적 프로토콜은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임의 접속을 꿈꾸며 스마트폰으로 장착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현대 사이보그가 꿈꾸는 네트워크에 대한 욕망은 감시와 소통이라는 모순된 얼굴을 하고 있다.

‘독일인 천재(로버트 위너)의 발명은… 종국에는 영국의 하늘에서 독일 비행기를 격추시키기 위한 전쟁에서 사용되었다’라는 언급은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발생시킨 모순된 가치에 대한 인지이며 동시에 이러한 현상 자체가 윤회의 업(業)이라는 백남준의 깨달음이다. 양아치의 <이젠. 우린. 충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신세계 인이다>는 백남준아트센터의 곳곳의 폐쇄회로 CCTV 카메라가 비추는 공간에서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이는 예술가에 의해 감시의 시스템이 놀이공간으로 치환되는 기묘한 개입, 사이버네틱스 기술에 대한 백남준 식의 접근방식, ‘폐쇄 회로’의 ‘개방 회로’로의 전환을 꿈꾸는 한낮의 해프닝이다.

・ 양아치 <이젠. 우린. 충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신세계인이다>, 2010

5. 손과 얼굴, 1961

결합의 틈새
헬레나 알메이다, 브루스 나우만, 태미 킴, 백남준

결합의 틈새는 백남준이 1961년 실행했던 <손과 얼굴>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지각과 감각의 동시적인 능력을 구성하는 신체의 이중적인 상태에 대한 탐구를 한다. 신체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사이에 낀’ 공간이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 사이에서 결합, 생성된다 : 백남준의 <손과 얼굴>, 알메이다의 <나에게 귀기울여 봐>, 브루스 나우만의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걷기>, 태미 킴의 <5 인터 락트 큐터스(대화자+갇힌)>, 이에 덧붙여 백남준의 <머리와 발(올림픽 스피드 업)>이 백남준 비디오 아카이브에서 발굴되어 처음으로 선보인다.

백남준, 알메이다, 나우만의 작품들은 모두 ‘사적인’ 행위를 담은 필름 또는 비디오로, 신체의 역할, 경험, 창조적인 생각으로 구성된 다양한 감각의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감각적인 인터페이스의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신체는 주체와 객체, 전체와 부분 사이에 전복될 수 있는 증거를 요구한다. 태미 킴의 작품은 신체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직접적인 관계 맺기를 요하는 작품으로, 참여자의 시각 사이에 고정된 시선과 서열을 만들어 낸다. 공간에 대한 배치를 방문자가 인지하도록 작동시키는 태미 킴의 설치작품은 사물들 사이에 거리감과 근접성을 끌어내는 매개체가 된다. 백남준이 실험했던 랜덤 액세스의 개념에서 병치된 관점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에서 제공되고 있는 정보들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신체를 인터페이스 내지는 저항 가능한 것으로 인식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를 재고하는데 있어 신체의 역할이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백남준이 그의 글에서 다루고 있는 참여적인 모델에 가까운 경험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이번 전시가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는가?

・ 헬레나 알메이다 <나에게 귀기울여 봐>, 1979-80
・ 브루스 나우만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걷기>, 1968
・ 태미 킴 <5 인터 락트 큐터스 (대화자+갇힌)>, 2010
・ 백남준 <머리와 발(올림픽 스피드 업)>, 연도미상

6. 아헨 1964.7.20 포스터, 1961

균형 잡힌!
토마스 허쉬온, 볼프 포스텔, 장영혜 중공업, 리처드 세라, 아라키 노부요시, 클레이튼 캠벨, 마사 콜번, 박찬경

균형잡힌!의 색션은 1964년 7월 20일 독일 아헨에서 있었던 이벤트의 포스터를 디자인한 백남준의 콜라주에서 시작한다. 이 날은 정확히 20년 전 스타우펜베르크가 독재자였던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날과도 일치하며, 백남준은 이 포스터에 전쟁, 고문, 성적 결박, 일상사 등의 매우 상이한 주제들을 콜라주해 붙여 놓았다. 균형잡힌!에 선보인 작품들은 백남준처럼 유머나 풍자를 통해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깊게 파고들기 위한 비교장치를 사용한다. 장영혜 중공업이나 박찬경의 작업의 경우 한국의 전후 상황에 있어 모순된 상황을 일상적인 단순한 이야기, 음악, 단순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현대 인류 역사상 가장 긴 분쟁지역 중의 하나인 한국에 대한 끔찍하거나, 평범하거나 이상하게도 재미난 사실들에 대해 단조롭게 묘사했다.

아라키는 1980년대 성적인 신체 결박 사진으로 유명해졌는데, 특히 서양에서 이런 사진은 유희, 비판, 고통을 오가는 거북하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작품들은 선입관, 담론적인 도전을 요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키며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리차드 세라의 경우 지난 미국 대선에서 ‘투표합시다(pleasevote.com)’ 사이트에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부시는 그만>이란 분필 드로잉을 제작하였다. 이 드로잉은 미군 병사들이 아랍 수감자들을 고문하면서 즐기는 일련의 사진들로 2004년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아부 지랍 고문 사진의 실루엣으로 그린 것이다. 스위스 작가인 토마스 허쉬온의 <균형잡히지 않은 배너>는 더 나아가서 매일 폭탄처럼 투하되는 수많은 끔찍한 이미지들과 사실들에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진을 볼 수 있으며 어떻게 이를 다루는지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허쉬온의 작품은 논쟁의 여지가 있고 잔인한데, 공공연한 이미지 배분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이런 사진들은 예술기관은 물론 미디어에서 자기 검열의 대상이 되어 우리가 경험하길 원하거나 그런 사진들을 보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도전적인 것이 될 수 있는지, 예술의 본질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 토마스 허쉬온 <균형잡히지 않은 배너>, 2007
・ 볼프 포스텔 <당신 머리 속의 해>, 1964
・ 장영혜 중공업 <오퍼레이션 누코리아>, 2003
・ 장영혜 중공업 <오퍼레이션 디어 리더(오퍼레이션 누코리아의 한국어 버전)>, 2003
・ 리처드 세라 <부쉬를 막아라>, 2007
・ 아라키 노부요시 <무제(로프로 묶기)> 시리즈, 1979-2004
・ 클레이튼 캠벨 <나의 아들이 0-11 이후에 배운 단어들>, 2004-05
・ 마사 콜번 <운명 선언>, 2007
・ 박찬경 <파워통로>, 2004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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